[프라하 여행 정보]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프라하 여행 2편! 스트라호프 수도원, 체르닌 궁전, 로레타 성당, 흐라디차니, 비타 성당, 구왕궁, 성 이르지 성당, 황금소로
바츨라프 광장에서 밑으로 내려와서 길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하벨 시장을 볼 수 있다.
하벨시장을 보고 난 후, 무스텍 역에서 지하철로 말로스트렌스카 역으로 이동한다.
말로스트렌스카 역에서 나와서 길 건너 트램 정류장에서 22번 트램을 타고 프호젤 역으로 이동한다.
프호젤 역에서 내려서 길을 건넌 후 길을 따라 위쪽을로 이동하면
스트라호프 수도원 입구가 보인다.
<스트라호프 수도원> (Kostel Nanebezeti Panni Marie na Strahove)
성에 들어와서 우리가 처음 보는 이 건물은 스트라호프 수도원입니다.
남성들로 이루어진 금욕주의 단체‘프리몬테시안’이라는 단체에 의해서 1140년에 만들어져서 아직 까지도 쓰이고 있는 성당입니다. 그런 이 스트라호프에 위기가 한 번 찾아 오는데, 1782년에 요제프2세에 의해서 수도원,교회 철폐 명령이 내려 집니다. 이 요제프2세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왕이면서,보헤미아의 왕, 신성로마제국의 왕인 인물이였는데, 자기 말보다 각 지방의 주교말을 더 잘 듣자 수도원 교회 철폐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무작정 없앨 수 없으니 3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그 조건을 하나라도 지키지 못 하는 수도원,교회는 철폐 시킨다고 공표 합니다. 그 3가지 조건이 무엇이냐?
첫째, 학문을 연구한 수도원
둘째, 교육을 했던 수도원
셋째, 나도 신과 함께 존경한 수도원
그래서 많은 수도원, 교회들이 철폐 당하는데 이 스트라호프 수도원은 살아 남았습니다. 이 옆의 도서관 때문에 살아남게 되는데, 무너지는 수도원,교회에서 책을 모아서 이 도서관에 넣고 수사님이 성서를 공부하고, 도서관에 아이들을 데려다가 교육을 하고, 건물 위에 요제프2세의 조각을 넣으면서 3가지를 다 지킴으로써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성당 문 위쪽에 석상이 있는데, 후광에 별을 달고 있습니다. 인간이 달 수 있는 별의 개수는 5개, 6개는 천사, 7개는 신인데, 저 여자는 12개를 달고 있습니다. 저 분이 카톨릭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 성모 마리아입니다. 성모 마리아는‘인간’이면서‘신’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5개와 7개를 합쳐서 12개의 별을 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오른쪽 도서관은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지는데,‘철학의 방’과‘신학의 방’으로 나뉘어 집니다. 각 방들 위에는‘역사와 진실을 찾기 위한 인간의 투쟁’과‘진실의 법’이라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체르닌 궁전>
1717년‘체르닌’이라는 체코에 나와 있는 오스트리아의 대사에게 주재국 일을 잘한다고 선물로 주어진 건물입니다. 나중에 체르닌 가문이 쇠퇴하면서 돈이 부족해지자 보헤미아(체코)에 팔게 되면서, 지금까지 외무부 부서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외무부 앞에는 작고, 우울해 보이는 동상이 하나 있는데, 이 분이 체코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을 하고나서 첫 번째 외무부 장관을 지내신 분입니다.
<로레타> (Loreta)
1626년 로코비츠키라는 남작 부인에 의해서 세워진 성당입니다. 건물 내부에는‘산타 카사’라는 것이 있는데, 이‘산타 카사’는 예수가 태워난 집을 의미 합니다. 원래 나사렛에 있던 것을 1294년 이탈리아 로레토 지방으로 옮기게 되는데, 전설에 의하면 천사가 옮겨 주었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 송판과 돌 일부를 때어다가 이 성당안에 새로운‘산타 카사’를 만들어 넣었습니다. 그런데‘천사가 옮겨 주었다’라는 전설이 생기게 된 이유는 로레토 지방으로 옮길 때 이탈리아의‘안젤리’라는 가문에 의해서 옮겨 지면서 이런 전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코비츠키 남작부인이 이 성당을 완성하고 이 안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드레스를 입고,그 드레스에 다이아몬드로 장식을 했다고 합니다. 식이 끝나고 난 후에는 그 다이아몬드를 때서‘성채’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흐라드차니> (Hradcanske Namesti)
10C에 성 바츨라프에 의해서 로툰다 양식에 조그마한 성당이 만들어 지면서 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11C에 들면서 스피티흐네프2세에 의해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성당이 커지고, 14C에 들면서 카를4세에 의해서 비타 성당과 부속 건물이 생기면서 지금과 유사한 왕궁 형태가 만들어지고, 1700년대 중반에 가면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여제였던 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커다란 궁전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마리아 테레지아가 자신의 이니셜을 새겨 넣는데, 가운데를 보시면 M,T,J 를 보실 수 있습니다. M,T는 마리아 테레지아. J는 요제프2세를 상징합니다.
양 옆에 보면 몽둥이와 칼을 들고 있는 커다란 조각상이 있는데,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티탄족입니다. 이 티탄족은 힘을 상징 하면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를 상징하고, 밑에 깔려있는 조각은 보헤미아(체코)를 상징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너희가 우리에게 반항하고,세금을 내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왼쪽을 보시면 왕관을 쓰고있는 독수리 -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를 상징하고 오른쪽에 보시면 왕관을 쓰고 있는 사자 - 보헤미아 왕가를 상징 합니다.
<비타 성당> (Katedrala Sv. Vita)
비타 성당은 303년에 실존했던 ‘비타’라는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입니다.
이전의 양식이였던 로마네스크(네모 반듯한)양식에서 고딕양식으로 넘어 오면서 건물이 길어지고 뽀족뽀족한 탑들이 생기며 많은 조각들을 볼 수 있는게 이 고딕 양식의 특징입니다.많은 조각들 중에서 툭툭 튀어나온 괴물 혹은 악마처럼 생긴 조각을 볼 수 있는데, 이 조각은‘가고일’이라는 악마입니다. 이 가고일은 낮에는 돌로 밤에는 살아 움직이는 악마입니다. 그런데 왜? 이 악마가 성스러운 성당 건물에 붙어 있느냐? 중세 북프랑스와 독일에서 유행했던,로마네스크 이후에 나온 양식이 이 고딕양식입니다. 그래서 미신이 붙어 있는데 이 ‘가고일’이 건물에 붙어 있으면 건물에 불이 안나게 지켜 준다고 해서 고딕양식에서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그리고 또다른 특징은 문이 항상 3개가 있는데, 왼쪽은 ‘성모 마리아’의 문 가운데는 ‘심판의 문’오른쪽은 ‘성 안나'의 문입니다.
성당 지하에는 역대왕들의 무덤과 주교, 그리고 성 비타의 오른팔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건물이 길어 지면서 남은 공간에 창문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 창문에 성서의 내용을 담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만들어지기 시작 합니다. 유리는 규석으로 만드는데, 만들 때 규석에 금,은,구리,철,납등을 합치면 색 유리가 나오게 됩니다. 그 색유리 조각을 붙여서 만든 것이 이 스테인드 글라스입니다.
이 창문은 무하의 녹색창이라 불리는 스테인드 글라스입니다.
맨 위쪽의 가운데를 보면 남가사 양팔을 벌리고 있는데 이분이 예수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왼쪽부터 보헤미아, 가운데 모라비아, 오른쪽은 실레지아 옛 체코의 땅을 상징 합니다.
그리고 그 밑에 수도사 복장을 하고있는 남자가 키릴, 오른쪽에세 세례를 해주는 분이 메토데이라는 분입니다. 이 두분이 800년데에 체코에서 가장먼저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그리고 지금 세례를 받고있는 분이 보르지보이 라는 당시의 왕이고, 그 밑에 양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분이 보르지보이의 부인 성 루드밀라 라는 분입니다. 성 루드밀라는 구교를 밑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며느리인 드미올라에 의해서 살해 당하며 순교를 당해 성인이 되신 분입니다. 그 밑에 성 루드밀라의 무릎에 대고 기도하는 꼬마가 성 루드밀라의 손자 성 바츨라프입니다. 그리고 양쪽에는 키릴과 메토데이의 역사를 일렬로 그려 놓았는데, 이 두분의 역사를 그려 놓은 이유는 이 두분이 체코에서 가장 먼저 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라틴어 히브리어로 되어있던 성서를 체코어를 번역한 두 분이기에 그려 넣었습니다.
이 그림은 아르누보 최고의 작가라 불리는 알퐁스 무하에 의해서 그려지게 되는데, 아르누보는 아트 누오보 - 새로운 예술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디자인화 되어있는 그림을 이렇게 부릅니다. 이 알퐁스 무하는 체코 사람인데, 파리에 가서 유명해지게 됩니다.파리에서 생계를 위해서‘사라 베르나르’라는 여배우의 포스터를 그리게 되는데, 이 여배우가 파리 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 제일 유명한 여배우 였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되고, 그의 독특한 스타일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유명새가 계속 되면서 엄청난 돈을 벌게 되고 미국에 잠깐 이민도 가게 되지만, 다시 그리운 체코로 돌아오게 됩니다.돌아와서는 국가와 민족에 관한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되는데, 그러면서 1918년 체코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을 하고난 후 체코슬로바키아의 최초의 지폐와 최초의 우표를 알퐁스 무하가 디자인하게 됩니다.
이 것은 그림입니다. 유리에 물감을 칠하게 되면 흘러내리기 마련이며, 그래서 얇게 칠하고 말리고, 다시 덧칠하는 식으로 그림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가운데 커다란 창문이 장미 문양의 창입니다. 가운데는 하느님을 상징하고, 장미잎 모양이 쭉쭉 뻣어나가는 모양으로 세계에 교리가 뻣어나간다는 의미이고, 그안은 천지창조를 상징 합니다. 이 스테인드 글라스는 무려 26,620개의 유리조각을 갖다 붙였고, 지름이 10.5m입니다.
뒤쪽에 보이는 저 무덤은 페르디난트 1세의 무덤입니다.
페르디난트1세의 부인 안나가 있었는데, 안나가 먼저 죽자 나의 사랑하는 부인을 이 성스러운 비타 성당 지하에 뭍어 줄려고 했으나 교회법상 성당 지하에는 역대 왕이랑 주교들만 뭍힐수 있었습니다. 교회법으로 반대를 당하자 나중에 아들 막시밀리안2세에게 유언을 남기게 됩니다.아들 막시밀리안2세가 유언을 들어 줄려고 했으나 교회법을 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지하에 묻지 말라는 법은 있는데, 지상에 묻지 말라는 법은 없어서 두 분을 이 묘에 함께 안치 시켰습니다.
그 뒤에 보이는 창문은 성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의 창입니다.
가운데 왕관을 쓰고 남자를 안고 있는 분이 하느님이고, 안겨있는 분이 예수, 하느님 얼굴 오른쪽으로 비둘기가 있는데, 이렇게 모여서 성 삼위일체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창문을 보게되면 성모 마리아가 자리하고 있고, 밑에 작고 네모난 성당을 들고 있는 분이 스피티흐네프2세(11C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건축)입니다. 왼쪽을 보면 기도하고있는 분이 있는데 이분이 성 바츨라프, 성 바츨라프 밑에 성당을 들고있는 분이 까를4(비타성당 건축)입니다.
오른쪽 문 위를 보시면 최후의 심판이라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데 가운데 예수가 심판을 내리고 있고 그 밑에는 연옥에서 심판을 기다리는 사람. 오른쪽에는 천국으로 올라갈 사람.왼쪽은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입니다. 이런 그림을 문위에다 그린 이유는 미사를 드리고 나가면서 한번씩 보고 죄 짓지말라고 경고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저 나무조각이 중세 프라하 성의 모습니다.
프라하 성은 페트르진 언덕 부분 뿐만이 아니라 까를다리를 건너 구시가까지가 전부 프라하 성에 속했습니다. 지금의 프라하는 1지구에서10지구까지 나뉘어 지는데 우리가 다니는 곳은 대부분1지구 안에 있습니다. 그 1지구를 5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비타성당이 있는 성지구, 그 밑에 왕족,귀족이 살았던 말라스트라나 지구, 까를 다리를 지나서 구시가, 구시가 옆의 유대인 지구,그리고 신시가 까지 5개로 나눌 수 있고, 이 모든 부분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옆의 비셰흐라드 지역까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속합니다.
이 옆에 있는 조각은 슈베르찬 베르크입니다.
이 그림은 체코에서 가장 유명한 신부님의 이야기입니다. 바로‘네포묵(1345-93)’신부님의 이야기인데, 네포묵 신부가 이곳에 주교로 있을 때 왕이‘바츨라프4세’라는 왕 이였습니다. 그런데 바츨라프4세가 자기 부인 소피아가 바람을 피고 있다고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뒷 조사를
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 소문이 소피아 귀에까지 들어 가게 돼는데, 당시 소피아는 바람을 피지 않았습니다. 소문을 들은 소피아는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쁘자, 실재로 바람을 피게 됩니다. 그리고나서는 바로 후회를 하면서 바로 네포묵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합니다.고해성사를 맞히고, 죄를 용서 받고 안심을 하고 돌아 가는데, 같이 따라갔던 신하 한 명이 이 이야기를 바츨라프4세에게 일러 바칩니다. 안그래도 의심을 하고있던 바츨라프4세는 네포묵 신부를 부릅니다. 그리고 무슨 내용인지 이야기를 하라고 강요를 하지만 네포묵 신부가 침묵을 지키자, 네포묵 신부의 혀를 짜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자, 이번에는 무릎 아래의 다리를 자릅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이야기를 하지 않자, 이번에는 네포묵 신부를 바위에 묶어서 까를다리 중간에 가서 수장시켜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흘 뒤에 네포묵 신부의 시신이 블타바 강 위에 떠 오르게 됩니다. 이 소문을 들은 바츨라프4세는 이런 성스러운 분을 죽였다는 미안한 마음에‘쿠트나 호라’라는 도시에서 은 3톤을 캐다가 네포묵 신부의 무덤을 만들어 줍니다.
이 곳은 성 바츨라프의 개인 기도실입니다.
성 바츨라프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볼레슬라브’라는 사람 이였습니다. 이 볼레슬라브가 형이 자꾸 전쟁에서 승리 하면서 땅을 넓히자, 자신도 욕심을 내기 시작 합니다.그리고 형, 성 바츨라프에게 독일이랑 손을 잡고 땅을 더 넓히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형 성 바츨라프는 그 제안을 거절 합니다. 그러자 형을 설득 시키기 위해서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하고는, 형 등에다가 칼을 꼽습니다. 칼을 맞은 형 성 바츨라프는 도망을 쳐서 숨을 곳을 찾다가,나의 개인기도실이 가장 안전 하겠다는 판단하에 이 곳 기도실로 오게 됩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잘 열리던 기도실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문 앞에 서 있던 성 바츨라프를 이 곳까지 쫓아온 동생 볼레스라브가 다시 한 번 칼을 찔러 죽였다고 합니다. 이런 성 바츨라프의 일대기가 벽면에 프레스코화로 쭉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 놓여져 있는 것이 성 바츨라프의 무덤입니다.
위에 보이는 것이 성 바츨라프가 이 곳을 지배 했을 때의 국장입니다.
가운데 보이는것이 보헤미아,오른쪽이 실레지아,그 위가 독일,그 왼쪽이 스위스,아래가 모라비아,그 아래가 오스트리아,오른쪽이 폴란드,그 오른쪽이 유고슬라비아입니다.
<구왕궁>
왕궁의 홀로써 검투가의 투창 시합을 했던 곳입니다. 현재는 대통령의 이 취임식, 독립 기념일 행사를 이 곳에서 합니다. 이 곳에서는 아주 유명하고 중요한 사건이 하나 일어 나는데 바로‘창문밖 투척 사건’입니다. 신교도 였던 시민들이 왕궁에 쳐들어와 구교였던 오스트리아 대사3명을 창밖으로 집어 던지게 됩니다. 그런데 떨어진 사람들이 볏짚 위에 떨어지면서 목숨을 구제하고, 이 곳에서 3시간 남쪽에 있는‘체스키끄르믈로프’라는 곳으로 도망을 치게 됩니다.이렇게 도망을 친 후 고국 오스트리아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오스트리아에서 보헤미아에 전쟁을 선포하게 되고, 이렇게 신교와 구교의 싸움이 되는 30년 종요 전쟁을 펼치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패한 체코는 오스트리아에 270년 이라는 세월 동안 속국으로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의 책임을 물어 보헤미아 귀족 27명을 처형 시킵니다.
<성 이르지 성당>
920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성 이르지(영국의 기사 겅 조지)에게 봉헌된 성당입니다. 원래 여성들의 수도원이였으나 요제프2세가 말한 그 세가지를 지키지 못하게
되면서 지금은 갤러리와 콘서트홀, 관장지로 용도가 바뀌었습니다. 성당 안쪽 깊숙한 곳에는 성 루드밀라의 무덤이 안치가 되어 있습니다.
<황금소로>
원래 이곳은 성벽을 지키던 기사들의 숙소로 쓰이다가 1526년 루돌프2세때 연금술사들의 작업실로 쓰이면서‘황금 길’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고, 그 이후에 빈민가로 쓰이다가 관광지가 되고나서 지금은 안쪽의 집들은 전부 기념품 가게로 쓰이고 있습니다.
들어가서 오른쪽에 있는 파란색의 22번지 집은 프라츠 카프카가 1916-7(8개월)가량 살았던 집으로 이곳은 서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황금소로를 보고 나오면 길을 따라 성 밖으로 나와서 성 밑으로 이동하여
다시 말로스트렌스카 역으로 이동한다.
혹은
옆의 정원을 따라 가다보면
계단을 통해서 성 밑으로 이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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